처음 강제규감독의 새로운 전쟁영화라고 하는 <마이웨이>를 접했을 때는, 역시 장동건이 주연이었던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만 관객을 끌어들인 <태극기>라는 영화에서 두 남자가 전쟁을 겪는 동안 느끼게 되는 고통과 아픔 혹은 광기에 대한 인상을 역시 두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마이웨이>에 투영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이웨이>는 분명히 <태극기>와는 다른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태극기>가 현미경을 통해 두 남자의 내면적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한다면 <마이웨이>는 두 남자를 망원경을 통해 이야기를 거시적으로 담아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켜보는 관객들도 한 발짝 떨어져서 영화를 보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일본'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에게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 일본에게서 속시원한 사죄의 말을 듣지 못한 가운데 이러한 예민한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면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흥행으로 따진다면 천 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된다면 이 이야기는 단지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지키는 인간이 끝내 신뢰를 이끌어 내고 결국 내가 네가 되고 우리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고 우리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서를 점진적으로 담아내어 많은 한국인들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태극기>는 민족, 가족, 형제애라는 강한 감정을 통해 주인공을 전쟁에서 괴물을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은 형과 아우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까지 극장을 찾았고 자신들의 형제와 자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게 되었죠.

<태극기>는 일상에서 무심히 시작하여 점점 인간의 내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전쟁의 그 살벌한 생존싸움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전우가, 친구가, 결국에는 애인까지 차례로 죽어가게 되지요. 점차 가속도를 내며 주인공과의 가까운 이들이 죽어감에 따라 우리는 주인공의 감정의 변화와 인간으로서의 고뇌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었고 결국 공감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마이웨이>는 일상의 한 개인에서부터 민족으로 그리고 결국 인간이라는 것으로 시야를 점차 확장시켜 나갑니다. 여기에 '달리기'로 상징할 수 있는 '신념'또한 개인의 것에서 민족과 인간이라는 틀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마라톤 경기는 내가 아닌 네가 되어 달리는 인간으로서의 신뢰를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이웨이>는 흡사 게임을 떠올립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에 대한 도덕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전개 구조에서 게임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긴 긴 상영시간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장치이자 <마이웨이>가 점차 거시적인 관점으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중요한 구성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공간에서 피지배자의 위치로 지배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들의 군복을 입으며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영화는 한-일, 아시아, 세계로 확장되어 나아가게 되지요.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국적과 인종도 늘어나고 전쟁에 등장하는 군사무기도 탱크에서 전투기와 전함으로 점차 규모가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다수]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게 되고 급기야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벌이는 다툼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깊게 새기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린아이의 대결에서 한일의 역사적인 관계로 확장되는 것의 배경은 만주입니다. 이 곳에서 한국인은 조센징이라 불리며 일본군의 옷을 입고 일본어를 사용합니다. 황량한 사막 혹은 들 풀 가득한 곳을 내지르며 달리는 젊은이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요. 일본을 황국이라 칭하고 카미카제와 할복이라는 일본이 생각하는 그들의 애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의 신념은 그들의 왕에게 죽음으로 충성을 다 하는 것이며 퇴각하는 비겁한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이들은 시베리아 벌목장으로 붙잡혀 가면서 한일의 관계는 다시 황인과 소련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소련 군복을 입고 눈보라가 내리는 벌목장에서 얼어죽은 시체를 태워만든 온기로 연명하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이렇게 한국인과 일본인은 만주에서의 상하 관계가 사라지고 똑같이 러시아군인에게 짓밟히며 자연이라는 시련을 겪어 내어야만 했습니다. 타츠오의 민족주의는 이 곳에 얼어붙어 마침내 눈물로 씻겨 내리게 되지요.

기구한 인생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끈질기게 운이 좋은 두 남자라고 해야 할 지, 이들은 다시 독일군과의 전투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타츠오는 자신이 이끌던 군대에 총질을 하던 모습을 한 러시아 장교를 그 대상으로서 지켜보며 개인과 민족에서 이제는 결국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결국 장동건과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두 남자는 노르망디 해변에서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 타츠오는 자신의 신념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영감을 주게 한 사람은 준식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달리는 소년으로 표현됩니다. 어쩌면 장동건이 연기한 준식은 너무도 평면적이어서 나약한 인간이라기보다는 타츠오에게 각성을 주는 초월적인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이 목전에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친구를 보살피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이야기하는 비현실적인 인물이 아닌가 하구요. (오히려 김인권이 연기한 준식의 친구, 안똔이 더 현실적이었죠.) 

반면 타츠오는 무척이나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남자가 하나의 인간이 되었다가 이내 애증의 대상인 준식을 가장 아끼는 친구가 되어갑니다. 그래서 게임의 전개방식을 닮았다고 표현한 이 영화는 각 공간마다 레벨업하게 되는 타츠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레벨업이라고 하는 공간의 이동마다 항상 피지배자가되어 절대적인 가치라고 믿었던 작은 신념들이 부수어지고 또 다른 내가 되어 반복적으로 나와 너를 교체하며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신념은 무너뜨리기 힘든 것입니다. 마치 정체성을 깨뜨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더욱 크고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좁은 시야와 편견을 거둬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말랑말랑한 마음일 때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너른 신념을 가지고 초월적인 존재로 표현된 준식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를 따라 작고 무른 자신의 신념을 전쟁의 긴 여정동안 키우고 단단하게 만든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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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봤습니다. 리타님의 세심하고도 다각적인 감상과 분석이 돋보이네요. 나름 차분히 영화의 장단점을 짚어주셨습니다. 요즘 리타님 영화평이 참 좋게 느껴지네요^^
  2. 영화팬들의 반응은 굉장히 안 좋은데..
    어쩌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겠네요.
    • 개인적으로 좋게 본 영화입니다. 지금 시기적인 부분이 불리하기는 하지만 언제 개봉된다 하여도 우리나라 정서로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제규감독도 어쩌면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좀 더 큰 이야기를 펼치면서 오히려 이러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즈라더님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3. 요즘 잘 안보이신다 했더니 TNM에서 퇴사하셨군요. ㅠㅠ 블로그에서라도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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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차를 타는 변호사>The Lincorn Lawyer, 왜 하필 링컨차를 탔을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제목만 듣고는 정치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캐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한 영화도 이미 몇몇 있어왔고, 번듯한 남자 둘이 나와서 심각한 표정인 것으로 봐서 16대 대통령 링컨과 관련한 그런 이야기일로만 알았습니다. 포스터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목에는 '링컨'하고 '변호사'만 큼지막하게 써있기도 합니다. 사실 원제가 <The Lincorn Lawyer> 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착각을 했더군요. 이런걸로 소위 낚였다고 해야 하나요? 혼자서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저만 그런 건 아닐꺼란 생각도 듭니다.


원래 영화는 예고편을 보거나 미리부터 어떤 걸 보겠다고 벼르다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은 어째 예고편도 챙겨보지 않았지 뭐에요. 단지 주변 지인들이 재미있다는 추천에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포스터 이미지와 제목만 가지고 제 멋대로 그런 생각이 들었었나 봅니다. 게다가 페라리나 포르쉐 혹은 현대같은 자동차가 아니라 링컨차라고 하니.

하지만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다가 원작까지도 유명하다고 하니 요기까지만 말씀드립니다.(스포일러라기엔 너무 뭉텅뭉텅하지만.) 순진한 척하는 사악한 의뢰인과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더러운 돈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가 한판 대결을 벌이지요. 정말 거짓말의 'ㄱ'조차 모를 것 같은 라이언 플립, '꾼'이라는 소리 들을만한 매력적인 미소의 매튜 맥커너히라는 두 배우의 캐스팅도 주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배우가 각자 캐릭터를 단지 외모만으로도 아주 잘 표현해주었거든요.

소설이 원작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는 헐리웃 영화의 그 흔한 3막 구조보다는 베베 꼬여서 좀 끝내줬으면 하는 순간까지도 긴장감을 놓치 못하게 했습니다. 대개의 헐리웃 영화의 경우라면, 두 주인공이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조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1구성점을 지나고, 주인공과 적대자 혹은 조력자 각자의 가치관이나 갈등이 뒤엉켜 폭발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어 결국 대접전이 일어나면서 2구성점을 지나, 마침내 갈등이 자의든 타의든 해소가 되어 결말을 맞는다는 그런 구조죠. 여기에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인공과 적대자의 공간을 대립적으로 표현하는 등 시청각적 장치를 마련해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러한 단순한 3막 구조에 맛깔을 더하는 잔물결같은 n막구조의 이야기가 끼어드는 느낌입니다. 어차피 소설은 읽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돌려보기도 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으므로, 영화만큼 이야기 전달에 친절하지 않아도 그 층위를 오락가락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좀 더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겠죠.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도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더 많은 갈등과 관계가 등장하고 그래서 더욱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도 했답니다. 흠. 영화를 보니 소설이 궁금해지기도 하는군요.

사실, 그동안 많은 반전 영화를 대해오면서 의뢰인이 사실은 범인일꺼라는 예상은 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 어머니의 개인사가 그들을 어글리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일말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구요. 이러한 점들이 무지막지하게 피튀기며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호러영화와는 완전하게 구분을 지어놓기도 하지요. 결국 이미 관객이 쉽게 예상하는 바를 보여주는 척 하면서 캐릭터들의 개인사와 가치관들이 뒤엉켜 또다른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링컨차'일까요?


페라리나 포르쉐 혹은 BMW나 아우디같은 꽤 알만한 자동차를 두고 왜 하필 '링컨'인가말입니다.
저는 주인공이 주구장창 타고 다니는 그 네모반듯한 링컨 자동차가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의 소설보다 영화를 매력있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에서 링컨차를 글자로<ㄹ ㅣ ㅇ ㅋ ㅓ ㄴ ㅊ ㅏ>로 표현하고 생김새를 묘사하면서 그 상징성을 드러낼 때, 영화에서는 단지 변호사가 링컨차를 타고 내리는 모습만을 아주 세련되게 무심한 척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링컨은 미국인의 존경받는 대통령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생김새는 날렵함이나 안전 혹은 드라이빙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자동차 브랜드가 내세우는 것은 '중후함', '품격있음'인 것입니다. 주인공인 미키는 교활한 수법을 쓰면서 범죄자들을 돕는 쪽에 서있습니다. 그가 사는 집은 그리 훌륭하지 않고, 부인과는 이혼을 했습니다. 어찌보면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아주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미키에게 링컨차는 마지막 '양심'이나 찾고싶은 '신념'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마약쟁이를 도울지언정, 정 반대로 
죽어도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넣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그런 신념말이죠.

그래서 맥커너히가 자동차를 타고 내리는 그 모습이 그리도 섹시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비뚤어지고 규칙을 어기는 것이 과연 저 멀리서 봤을 때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요? 오히려 지그재그 걸어나간다해도 어디로 가고 있는 지 그 방향에 대한 확신이나 신념이 있다면, 결국 제자리를 찾고 그게 옳은 것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요. 

두 주인공의 긴장감 넘치는 두뇌게임이 스토리에 관객을 끌어 들였다면, 집으로 돌아온 관객에게 링컨차를 타는 주인공의 모습은 삶 속에서 무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을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의 링컨차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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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10개가 달렸습니다.
  1.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2. 개인적으로 구성과 연출이 잘 된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런 것 같네요. 법정을 다룬 영화는 좀 어려워하긴 해도 레인메이커 이래로 저에게 볼 만한 영화인듯 합니다^^
  3. 저도 봤는데~
    이거 잘생긴 남자들이 나와서 유명한 영화였죠 아마^^ㅋ
  4. 이 영화도 정말 재미있겠군요!
    링컨 차도 정말 멋있어 보입니다.....
  5. 이제 보니 영화를 본지가 아주 오래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본 영화가 마마미어 였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제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지 모르겠네요. 방문 댓글 보고 찾아왔습니다. 늘행복하세요. ^^
    • 와아~~~ ^^ 역시 자동차 관련 포스트에 댓글달아주셨네요~ ^^ 영화관이 답답하실것도 같네요. 평소 탁 트인 곳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아서요.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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