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과 사랑에 빠진 독자들이 분명 많을테지만, 리타도 그 무리에 슬며시 동참해보고자 합니다. 처음 알랭드 보통과 만나게 되었던 <불안>, 봄병앓이에 흐느적거릴 때 링겔주사처럼 만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이어 가을에는 터키쯤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행의 기술>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읽은 수 많은 책들과 딱 그만큼 많을 예술작품들에 대한 생각과 정리가 하나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담겨져 슬쩍슬쩍 자랑하는 듯한 것도 얄밉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표현해내는 섬세한 감정의 묘사에 수긍했기 때문일 것이고, 누구나 꿈꾸고 희망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해주어 대리충족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여행의 기술>에서도 이전의 그의 책들에서처럼 조금은 얄망스럽고 까칠한 화자의 태도는 유지하면서도(여성에 대한 취향이나 습성들까지도 드러나기도 하죠.) 책을 구성하는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책에서 나온 말 처럼, 우리는 예술과 여행의 욕망 사이의 오래된 관계에 대해 모르지 않기에 유명한 화가나 탐험가들이 거쳤던 공간에 비록 다른 시대라지만 함께 머물러 보고자 하는 욕구는 벗어나기 힘들죠.

 

 

리타가 주문진항에 들렀다가 한 컷!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

 

 

 

알랭드 보통은 여행했던 장소들을 그곳을 거쳐간 유명한 인물들의 작품이나 저작을 연결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도저히 어느하나 새롭게 바라보고 측정할 수 없을만큼 모든 것이 알려진 도시를 걸으면서, 두 시간에 한번 해수 온도를 측정하고 파리가 해발 몇 미터까지 살아갈 수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과 발견에 대한 목마름을 느낀다던가, 사이프러스나 올리브나무의 형태를 그림을 통해 기존에 전혀 다른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던가 하는 이런 경험들은 리타에게는 또하나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 에세이는 결국에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생경한 것을 찾아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게 되고, 그것을 얻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생기죠. 그 가운데 우리는 새로움에 대한 단순한 갈망으로 우리 주변의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따분할 것만 같은 한적한 시골마을은 대자연의 숭고함을 품고 있고, 내 방에서조차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이죠.

 

 

한 때 그렇게 빛나던 광채가 지금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랴

풀의 광희의 시간, 꽃의 영광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영생 불멸의 노래 ode,infinations of immortality>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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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작은 글에서조차 사람들 각자의 삶에 하나씩의 해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구구절절 세세한 이야기나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주제에서 분수처럼 퍼져나가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개념들을 통해 각자 스스로 통찰을 얻어내도록 합니다.

<불안>을 쓴 알랭드 보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와 결국에는 종교, 철학, 예술 혹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이유와 해법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보통은 불안의 이유로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들었지만 저는 이 말들을 결국 불안은 상대성때문이라고 뭉뚱그려 말해보렵니다.






내 스스로 안전하고 건강하며 또 거울을 보며 미소 지을 정도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은 항상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또 다른 사람이 항상 나를 추켜 세워주기를 바라며 현재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더 가치를 두는 등의 비교의 연속이 결국 불안의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보통이 불안의 원인으로 이야기 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보통도 흘깃 지나가기는 했지만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순작용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그동안의 패턴이나 맥락이 있다면 유리하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에서 기대로 바꾸고 더 몰입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진화라는 것도 엔트로피 즉, 불규치성이 증가하는 것에서 예상하지 못한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런 기적들이 모여서 지금까지의 고등 생물들로 진화해오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불확실성은 불안한 이유가 된다고 하기에는 조금 빗겨두었으면 싶습니다.




친절한 보통씨는 불안의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와 보헤미를 들었습니다.


장-밥티스트 샤르뎅 <회복기 환자의 식사>, 1746
-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림으로써 과연 무엇이 더 값지고 중요한가를 이야기 함


중간에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게 되는데요. 정말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나를 놓아두면 조금 구질구질해도 마음 편안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 곳에서 얼마나 원하는 바를 편안히 보고 듣고 먹고 쉴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 보이는가 봅니다.

‘다른 사람의 비난과 조롱에 감정을 무너뜨리지 말고 내면의 가치에 견주어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해 온 대범한 사람들에게서 편안함과 여유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한순간의 모멸감을 무시해내는 것은 효과가 더 큰 것이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또한 눈앞에서 악다구니를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문학과 그림을 토해 적당히 비유적으로 또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풍자와 비판을 해내는 예술을 더 가까이 해서 슬기롭게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다시 모두 아는대로) <불안>은 인간의 불안이 결국 상대성때문에 생긴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단단한 절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을 잘 이해해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설파하고 있는 책인듯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지 않더라도 꼭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오히려 행복한 순간에 불안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것도 그 행복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요새 사실 리타가 괜히 힘이 불끈 솟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왜 행복한 지 알면 앞으로도 계속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물론 (바라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불안감이 생겼을 때에도 그 해법을 찾아보는 데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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