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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팟캐스트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회사 동료가 점심시간에 껄껄대며 이야기 하길래 호기심으로 ‘나꼼수’를 들어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튠즈에서 다운 받아 출퇴근 시간에 듣기 시작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참느라 무척 힘들었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참 실없이 웃는 사람이라고 눈치를 주었을지도 몰라요.

아마 '나꼼수'를 들어 본 분들이라면 아마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지금까지 32회의 나꼼수 외에 호외3회 봉주4회를 들어오면서 그들이 나꼼수에서 낄낄거리며 비속어를 내뱉으며 이야기 하는 ‘디테일’에 집중해 오고 있습니다.


리타가 지난 토요일 문화콘텐츠 관련 모임인 ‘갈라파고스’포럼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화콘텐츠,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꼼수’의 사회/정치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다루는 것과 달리, 뉴미디어를 통해 대중성을 얻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서 주목해보았습니다.



1. 나꼼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


우선 ‘나꼼수’가 나오게 되었고 또 호응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아무래도 음원파일인 ‘나꼼수’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기술적인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작년에만 500만이 넘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생겨났고, 올해에는 2000만이 넘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등은 작고 보잘것 없는 모바일 기기에서도 복잡한 컴퓨팅이 가능하게 하고 용량이 큰 영상도 언제든 올려내려 볼 수 있도록 했죠.


게다가 웹2.0은 이제 너무도 익숙해진 용어입니다. 그만큼 사람들도 웹2.0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참여와 공유가 당연하게 생각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나꼼수’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전하고 함께 고쳐보자고 합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이 듣고 보고 사고 참여하면서 우리의 ‘나꼼수’가 되도록 한 것이죠. 여기에 SNS의 가능성을 더 실감하게 되었죠.


작게는 팟캐스트라는 콘텐츠 생산소비 생태계의 가능성을 또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손쉽게 음원을 올리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든 내려받아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작게 시작하여도 그 가능성을 충분히 실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봉주 4회에 나오는 팟캐스트 관련 통계 내용입니다.

     스마트디바이스 사용현황 및 예측/ 소셜미디어 사용현황/ 클라우드 컴퓨팅 모식도


물론 이들의 그동안의 커리어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각각 온오프라인 언론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고(김어준, 주진우), 전직 국회의원으로 나꼼수의 주제를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으며(정봉주), 시사전문가로서 그동안의 시사적인 내용을 꿰뚫으면서 꿈이었던 PD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찾게 됩니다. (김용민)


물론 사회/정치적 배경으로으로 총선과 대선을 1년여를 남겨 둔 시점에서 세계적 경제 불안과 4대강 등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지요.



2. ‘나꼼수’


나는 꼼수다는 2011년 4월 28일 첫 음원이 업로드 된 이래로 지금까지 39회의 음원이 업로드 된 상태입니다. 8회 주진우 기자의 합류이후, 오세훈 전 시장의 낙마와 서울시장 선거에서 많은 주목을 끌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게 되었죠.


이들의 캐릭터는 회를 거듭하면서 개성을 강화시켜 나갔고 그 캐릭터 관계도 조화를 이루어 나갔답니다. 주진우와 정봉주가 상반되는 입담으로 대결구도를 만들어 나가고 김어준이 조율하는 식이었죠. 여기에 김용민은 외부에서 음악과 뉴스기사보도등을 편집하면서 나꼼수에 참여합니다. 삐거덕거리는 에어콘더 빼놓을 수 없겠죠.


저는 지금까지의 나꼼수의 진행과정을 임의로 4단계의 진화단계로 나눠봤어요.


첫단계는 ‘나꼼수’의 컨셉을 잡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로 다가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법은 가장 현실적이고 친근한 아저씨들의 친절하지 않은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자신을 더 드러내려고 아웅다웅하면서도 내용만큼은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서 진지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 아이러니함이 더 ‘나꼼수’를 나꼼수답게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진우 기자의 합류로 캐릭터 구조를 완성하고 ‘나꼼수’의 개성을 완성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이 시점에는 그동안 다뤄왔던 과거의 사건에 대한 숨은 정보를 이야기 하는 것에서 현재 뉴스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결과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서울 시장의 퇴임과 선출과정의 상황을 긴밀하게 다루면서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라면 이들이 음원파일 밖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미디어를 아우르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알게 되고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토론하고 나름의 판단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죠. 지난 가을부터 서너차례 수많은 관중들을 불러 모은 토크 콘서트는 혼자 웃음을 참으며 듣던 이들이 모여 함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티셔츠, 달려, 음원등의 머천다이징 상품, 그리고 구성원 각각 펴낸 <닥치고 정치>,<달려라 정봉주>,<나꼼수 뒷담화>는 마치 음원파일을 듣는 이들이 그 비용을 지불하는 식으로 세트로 팔려나가기도 했구요.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본격적으로 외부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금입니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입감과 야당 통합과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진행하면서 ‘나꼼수’는 기존의 언론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합니다. 이를 뒤 이어 경제를 다룬 스핀오프 ‘나는 꼽사리다’가 등장하기도 하였고, 다른 형태의 팟캐스트들이 시도되기도 합니다.



3. 포스트 ‘나꼼수’?


저는 ‘나꼼수’를 현대판 판소리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판소리가 기존 기득권에 대해 비파을 풍자와 해학의 놀이로 풀어낸 것처럼 자칫하면 심각하고 불편한 주제를 듣기 거북할 정도의 웃음을 섞어 넣으며 텍스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유명 인사들을 불러서 토론회를 진행해도 아바타 토론회니 떨거지 토론회니 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서 경쟁과 게임의 룰을 적용합니다. 이것은 ‘나꼼수’가 철저하게 듣는 이들을 고려하고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최적화된 언어로 전달하면서도 그것을 이야기 하는 방법이 게임이나 음악 혹은 풍자와 성대모사를 넘나듭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이것이 시사/정치 이야기인지 개그 프로그램인지 가끔 헷갈리도록 합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사적인 풍자를 다루고 아예 ‘나꼼수’를 패러디한 ‘나는 하수다’가 나온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죠.)


각 구성원의 커리어에서 오는 구체적인 숨은 자료들, 구성원의 독특한 개성과 조화, 흥미롭게 전달하는 형식들이 어우러져서 그들이 목표로 하는 ‘현 정권의 비판’에 힘이 실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포스트 ‘나꼼수’를 굳이 새로운 팟캐스트에서 찾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의 책이 될 수 있고, 공연이나 영화 혹은 공산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스트 ‘나꼼수’는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경계를 부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경계, 미디어의 경계, 생산 유통 향유의 순환이 하나로 묶이는 것 말이죠.

팟캐스트와 웹, 앱을 통해 전달되는 텍스트는 SNS를 통해 확산/유통/홍보되고 그것이 명성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책, 공연, 머천다이징 상품 등으로 새로운 시도를 위한 수익을 발생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단지 돈으로 바꾸는 상품이 아니라 공감을 통한 명성을 기반으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문화콘텐츠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모른 척 해서는 안됩니다. 더더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경험하는 것이 또 하나의 나로 인식되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이 책이나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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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최근 일은 책인 <불통의 시대 소통을 읽다>라는 책과 몇몇 책을 연결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지금 여기에 대한 생각이 있어 몇가지 생각을 붙여보고자 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진심(사실)을 말하지 않은 정보 제공자와 메시지를 자기 취향에 맞춰 해석하려는 수신자 사이의 항구적인 협상과정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사실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의 관점과 취향이 반영되고 때로는 그의 의도대로 가공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잣대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항상 이러한 주고 받음에서 마뜩치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몇몇은 인정하고 몇몇은 흘려들으며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소통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골치아픈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통(疏通)이라는 한자어도 통하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서로의 장벽을 깨다는 의미가 붙어 '막힘이 없이 통하다'라는 말이라고 하던데요. 앞의 이야기와 이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아닌가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SNS등의 가능성에서 유영하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얼마인지조차 가늠하기도 힘들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까지 기술의 발달에 의해 사람들은 기계, 기술의 이데올로기에 매료되어 끌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기계가 바라는 패턴화와 합리성이라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이라고 생각되기조차 했구요. 저 조차도 공학을 전공하면서 기술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인류가 이만큼 편리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들의 발달에 이끌려 숨차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런 소통의 기계들 즉, 라디오, 전화,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웹의 발달과정에서 얼마나 주변과의 소통을 이루어 내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볼통이 이야기 한 것처럼 사람들은 더 많이 섞이고 다른 이들을 접촉할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들과 소통할 시간은 너무도 적은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더 많은 갈등과 불소통이 만연해질 지도 모를 일이죠.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센터 리서치 디렉터이자, CNRS산하 소통과학연구소 소장이며 30여년간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프랑스 최고 석학 중의 한 사람이라는 도미니크 불통의 책입니다. 학자의 글이라서 다소 딱딱하기도 하고 어려운 용어를 섞은 만연체는 읽기가 부드럽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뒤쪽의 저널리스트와의 대담을 글로 옮겨 적은 부분은 앞 선 글과는 달리 잘 읽히는 편입니다. 볼통의 생각을 좀 더 다양한 방면에서 알 수도 있습니다.


최근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 음원이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멀어진 세대의 정치에 관심을 되돌려 놓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었다는 평가도 있고, 그들의 의견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부족하여 너무 한편으로 치우친 것이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야기한 그의 세계, 즉 유럽연합이라든지 그가 확장한 남미의 소통으로 연결된 공동체라든지의 이야기에 저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볼통이 이야기한 기술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으로 이만큼 잘 살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가 이야기 한 정체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소통에 관한 다음 인문학적 이데올로기로 가는 과도기에서 우리나라가 어떠한 성공을 이루어 낼지 궁금해집니다.

여기에서 '나꼼수'의 반향이 우리 사회에 많은 의미가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시시껄렁하고 다소 정신 사나운 이야기들을 듣고 낄낄 웃다보면 그들은 '소설'이라는 데도 왠지 사실인 것 같고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나의 취향과 맥락을 곁들여 내 안에서 협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이야기의 100%가 아닌 나의 이야기 100%가 만들어지는 소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볼통이 이야기 한 기술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의 폐해라고 이야기 하는 수단 뿐인 세상을 견제하는 것이죠. 즉,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아이팟(아이폰)에 들어가는 음원들이 누구나 부담없이 자의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소통'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방송으로 무의식적, 피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더하고 반응을 통해 직접 움직이면서 여러가지 움직임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지요.

<큐레이션>에서 이야기 하는 큐레이터의 작용, 그리고 <생각 조종자들>에서 이야기 하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넓은 관심에 대한 이야기와 어우러져, <불통의 시대 소통을 읽다>는 중간단계에 대한 직무수행을 연결하여 본다면 '나꼼수'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 중간단계의 주체와 직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판 능력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며, 중간 단계와 반권력은 이러한 중간단계자인 기자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나꼼수'를 통해 볼통이 이야기 한 것 처럼 우리나라도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정보에 관해서는 거인이며, 행동에서는 난쟁이가되어 버리는 괴리감을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지금까지 기술적 이상이 발신자와 메시지, 수신자들이 일직선 위에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소통의 문을 열고 갈등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또한 '나꼼수'가 영리하다고 느껴지고 소통과 관련하여 다시금 보게 되는 것은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산업들이 미래의 정치적 갈등에서 핵심이 된다는 견해와 맥을 같이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들은 팟캐스트 음원을 끈질기게 1주에 한번은 올려놓고 그들의 책을 통해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오프라인 강연회를 통해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어 나갑니다. 각종 CM송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캐릭터가 들어간 티셔츠가 입소문으로 매진이 될 정도라지요.

이제 우리는 다원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혼혈인인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유럽이 연합이 되어 다양한 사안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우리도 다양한 목소리를 들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로 규격화된 법제나 인식을 넘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선행되고 그것을 융합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와 정치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저자의 생각을 접하면서 생각의 스펙트럼이 조금은 넓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꼼수'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우리는 가상세계와 웹이라는 기술의 화려함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변의 진짜인 것들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충분히 지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가꾸고 있는 가가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야 메시지를 보내는 발신자와 협상할 주체로서의 수신자가 될 수 있으며 소통을 이루어 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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