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시간은 이상합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바쁜 시간이고 또 저녁을 먹고나면 잠들기까지 시간이 참으로 애매하거든요. 친구와 만나서 차를 한잔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집에서 즐겨보는 TV프로그램 한두가지를 보면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는 의무감같은 것이 있어요. 주5일 9-6근무족이 아니어도 좀 그렇지 않나요? 평일 그것도 월요일 저녁은.

 

그래서 무언가를 배워보겠다거나 듬직한 주제의 강연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주말 오후시간보다 굳세게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철학'과 '문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월요일 저녁시간을 세시간 할애한다는 것은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할듯합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이번 토크 프로그램에 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저녁을 먹지 못해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가는 길에 과자 부스러기 먹은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이날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2 예술인토크프로그램으로 매달 1회 진행되는 것이었어요. 요즘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된 리타로서는 관심있는 주제가 아닐 수 없었지요.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막상 책을 읽어도 어렵기도 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걸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편안한 이야기의 자리에서 철학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시인과의 대담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마음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답니다.

 

이날 진행자는 김용규님이셨구요. 초대작가는 심보선 작가님이었답니다. 두 분의 대담이 있기 전에 연극배우 조주현, 양말복씨의 낭독공연이 있었는데요. 제목은 <장지로드의 아폴로>였답니다. 두 분배우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위트있는 대사는 이렇다할 무대장치나 소품이 없어도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게 했어요. 1인 다역을 진행해도 각 캐릭터의 개성을 잡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이야기 하는 것이 역시 배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낭독공연은 이어 진행된 김용규님의 강연과 주제가 이어졌답니다. '두언어, 두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사실vs. 진실, 지상의 언어vs. 천상의 언어라는 말이 나왔죠.

 

낭독 공연의 주인공인 애그네스가 썼던 언어가 바로 '진실의 언어', '천상의 언어'였어요. 존재와 존중 그리고 자존감을 지키는 언어로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는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일면만을 보고 그의 전부인냥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눈썹도 '제왕의 눈썹'이 될 수 있고, 비쩍마른 무릎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옳은 것에 대한 규정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상기시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애그네스가 진실의 언어로 이야기 해서 회장과 결혼하였다는 데에서 그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것이 곧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못나 보이는 부분을 보듬어 볼 수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의 그 고마움이나 안도감 혹은 친근함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낼것입니다. 김용규님도 '듣는 사람이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곧이 곧대로 듣지는 않을것이지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인정의 말, 진실의 말, 천상의 말을 통해 신뢰로 넘어갈 수 있고 내면의 가치를 더 드러낼 기회를 갖게 될거라고 봐요. 그래서 리타도 앞으로는 사실에 자신의 느낌을 붙이는 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판단의 언어보다 진실의 언어를 이야기함으로써 상대방 스스로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도록 말이죠.

 

마지막 코너에는 심보선 작가와 김용규님의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심보선 작가는 외국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소탈하게 이야기 했답니다. 진지하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지고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멋져보였거든요. 김용규님도 중간중간 위트있는 말로 매끄럽게 진행해주셨는데, 두분의 이야기와 중간중간 심보선작가의 시낭독이 그럴듯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것 같았어요.

 

특히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가 좋더군요. 천사가 '쉿!'하면서 내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어서 생긴 인중이라는데, 우리는 그 태아시절의 비밀을 지키느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몰라요. 그러다가 인중을 긁적이며 무의식중에 이끌리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지는 것일지도...

 

인중을 긁적거리며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중략)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 온다.

 

(후략)

 

 

 

시를 읽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를 끌어내다가도 읽는 이의 개인적인 맥락이 더해져서 더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짧으면서도 긴 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해요. 리타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소탈하고 담담한 시도 그랬고, 심보선 작가가 인상깊게 보았다던 어느 아이의 동시(낙엽이 떨어지며 외쳤다. '슈퍼맨!')도 그렇고 말이죠.

 

가끔은 우리의 마음과 정서에 양분을 촉촉히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풍요로운 주말이 아니어도 이렇게 굳게 마음먹고 자리하게 되는 평일이라는 것도 나름 의미가 되어줄것 같네요.

 

3인칭의 언어가 아니라 당신, 너라는 2인칭의 언어로 우리가 함께 대화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의 프로그램으로 매월 넷째주 월요일 오후 7시20분부터 월1회 진행된답니다. (http://artisthouse.arko.or.kr) 에서 참가신청을 받을 수 있고, 관련 내용은 webzine.munjang.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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